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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

스위스의 현대시대 역사

꼬미야때미 2022. 6. 15. 02:36

목차



    스위스의 현대 역사2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대공황은 전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고 스위스 역시 심대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주요 수출 분야였던 시계를 비롯한 기계 산업과 섬유 산업의 수출량이 급감했고 유제품의 가격은 폭락했습니다. 실업자들도 양산되어 1936년에 실업자의 수는 약 124,800명에 이르렀습니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가 법제화된 것도 이 시기인데 경제가 어려워진 세계 각국이 스위스 계좌를 추적하자 스위스는 1934년 법을 제정해 계좌를 어느 누구도 추적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스위스 비밀계좌는 세계인들로부터 스위스가 가장 큰 비판을 받는 부분으로서 전 세계의 막대한 검은돈이  스위스 은행에 예치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는 자금에 대한 보관료를 통해 현재까지 매년 엄청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고 세계 금융 위기 이후 거센 비판에 직면한 스위스는 조금씩 세계 각국과 불법 자금에 대해서 협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공황을 거치며 독일과 이탈리아에 파시즘전체주의가 급성장했고 1938년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강제 합병하여 야욕을 드러냈습니다. 국제 연맹은 독일의 이 같은 행위를 규탄하며 제재를 가했지만 스위스는 이를 실천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국제 연맹에 탈퇴했습니다. 이번에도 스위스는 전쟁을 예감해 발 빠르게 대응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 하기 이틀 전 스위스는 40개국에게 자신이 중립국임을 명확히 알렸습니다.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독일은 손쉽게 프랑스까지 정복하였고 스위스는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그리고 독일에 점령한 프랑스에 둘러싸인 처지가 되었습니다. 히틀러가 요충지인 스위스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으며 아무리 대비가 되어 있어도 스위스가 모든 방향을 다 방어할 수는 없었습니다. 심지어 스위스 내의 독일계 국민들 중 히틀러에 동조하는 세력들도 있어서 스위스의 분열을 획책했습니다. 스위스는 내부 단속에 들어갔고 국경 수비를 포기하는 전략으로 선회하였고 독일 기갑 부대에 유리한 평야 지역을 포기하고 험준한 산악지대로 전선을 옮겨 독일의 침공에 대비했습니다. 약 43만 명의 예비군과 민병대는 즉시 소집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전쟁 발발 시 언제든 뛰어나갈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도로와 교량에는 폭발물을 설치해 스위스를 점령해도 아무런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또 전쟁 동안 달러화나 파운드화를 대신해 중립국인 스위스 통화 즉 스위스 프랑이 기축통화가 되었습니다. 독일은 전쟁을 위한 원자재를 수입하기 위해 스위스 프랑이 꼭 필요했고 스위스는 독일에게 스위스 프랑을 제공함으로써 독립을 지켜내고자 했습니다. 그 외에도 스위스는 독립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했고 1945년 독일의 항복으로 2차 세계 대전은 끝이 남으로 스위스는 중립과 독립을 지켜냈습니다. 

    스위스 중립에 도움을 준 단체가 적십자인데 장 앙리 뒤낭의 주도 하에 전시 상병자 구호를 위한 단체인 적십자가 1863년 창설되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에서도 적십자는 국가와 진영에 관계없이 부상당한 사람들을 스위스로 후송해 치료해 주었고 그 수는 약 6만 8천 명에 달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에서 적십자의 활동은 1차 세계대전과 유사했는데 주로 포로수용소를 방문해 실태를 모니터링했고 민간들을 구호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다만 나치 독일이 수용소 모니터링 등에 대해 비 협조하면서 독일에서는 구호 활동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스위스인이 창립하고 스위스에 본부를 둔 적십자의 구호 활동은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스위스의 중립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켰습니다. 중립국의 대명사가 된 스위스에 많은 국제기구와 국제회의가 들어서며 스위스는 더더욱 중립국의 이미지가 강화되었습니다.

    1945년 2차 세계 대전은 막을 내렸고 전후 스위스는 유래 없는 경제적 호황을 누렸습니다. 수출량이 10배 이상 급증했고 인구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1950년대 이탈리아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유입되었으나 1970년대 경기 침체가 일어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은 감소했습니다. 1970년대 경기 침체가 중동발 석유 파동과 일본발 쿼츠 파동 때문이었는데 에너지 지 의존도가 높았던 스위스는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었고 스위스 기계 산업의 핵심인 시계 산업은 쿼츠 파동으로 인해 붕괴 직전까지 갔습니다. 

    주춤했던 스위스의 경제는 1977년부터 GDP가 다시 증가하며 호전되었으며 근면하고 준법정신이 강한 스위스 국민들의 국민성 또한 경제  발전의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스위스 국민들은 스위스를 가장 이민 가고 싶은 나라, 1인당 GDP가 세계 2위인 국가로 성장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