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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의 근대 역사2

    나폴레옹 전쟁 이후 1815년 빈 회의 결과 스위스는 영세 중립국임이 인정되었고 발레, 뇌샤텔, 제네바가 스위스 연방에 편입되어 현재 스위스 국경과 유사한 형태를 갖췄습니다. 영세 중립국의 지위는 스위스의 외교적 노력도 있었지만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얻어진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 국가가 스위스를 단독으로 차지하여 세력 균형이 무너질까 두려웠기 때문에 스위스를 서로 침략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스위스는 1815년 본격적으로 과거의 각 주들이 자율성을 가졌던 구체제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전파한 혁명의 사상은 스위스인들에게 많이 뿌리 내려져 있었습니다. 약한 연방정부를 선호하는 즉 과거 구체제로 선호하는 보수주의자들에 대항해 자유주의자들은 계속적인 투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1830년 프랑스에서 7월 혁명으로 국왕 샤를 10세가 퇴위되자 자유주의자들의 투쟁은 더욱 탄력을 받았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은 통일된 국가와 강한 정부를 원했습니다. 통일을 요구하는 진보적인 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보수적인 세력 간에 국지전이 일어났고 종교 문제로까지 비화되어 사태는 심각해져 갔습니다. 1845년 7개의 보수적인 주는 가톨릭을 중심으로 뭉쳐 존더분트를 결성했고 내전으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을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외세가 개입하기 전 신속하게 내전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판단했던 기욤 앙리 뒤푸르 장군은 1847년 존더분트 공격을 지시해 존더분트를 해산시켰습니다. 1년 뒤 유럽에 혁명의 바람이 다시 불어 닥쳤고 스위스는 여기에 편승해 새 연방 헌법을 제정했습니다. 새 연방 헌법의 핵심은 기존 각 주들의 동맹 체제였던 스위스가 연방제를 채택한 하나의 국가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로 출범한 스위스 연방은 19세기 시계 산업의 가파른 성장세와 스위스 연방 은행 설립 등을 통한 금융업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 붐이 일어난 알피니즘의 유행과 도로 개선 및 철도 부설과 같은 교통의 발달은 스위스 관광산업의 토대가 되어주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유럽의 패권이 재편될 기미가 보였고 그 주역은 프로이센이었습니다. 1870년 보불 전쟁에서 스위스는 중립을 선언했고 유럽의 패권이 급격히 재조정됨으로써 큰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스위스를 엄습해왔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헌법으로는 각 주들마다 군사 체계가 달라 군사적 대응이 어려웠습니다. 동시에 헌법은 복잡화되어 가던 산업에도 어울리지 않는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법이었습니다. 크게 2가지 이유로 1874년 헌법 개정이 단행되었습니다. 현대 스위스 연방 헌법의 모태가 된 이 헌법에 따라 군사 제도가 통일되었고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위한 법 체제가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를 대표하는 국민투표제도 이때 도입되었는데 차별적 이게도 이 국민투표는 남성만이 할 수 있었고 여성이 국민투표에 참여하게 된 것은 약 100년 후인 1971년이 되어서야 국민 투표를 통해 여성 투표권이 허용되었습니다. 남성들만이 참여한 국민 투표로 여성의 국민투표권 허용 여부를 가렸습니다. 

     

    스위스의 현대 역사1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영세 중립국인 스위스는 당연히 중립을 선언하여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스위스도 이 전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자원과 식품 등의 수입에 어려움을 겪었고 스위스 남성들은 혹시 모를 침략에 대비해 아무 보상 없이 군 복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폭등한 스위스의 물가 역시 국민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게 만들었고 좌파세력에 의해 평화주의 운동과 노동 시간 단축 등 좌파적 제도 도입 요구 등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전쟁이 끝난 1918년 노동자들의 파업은 극에 달했는데 전국 각지에서 약 25만 명의 노돌자들이 14일간 총파업을 단행했지만 군대에 의해 무산되었습니다. 그런데 파업이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이후 좌파 정치 세력의 요구가 반영된 절대다수대표제 대신 비례대표제로 선거 제도가 변경되었고 주 48시간 노동제가 통과되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20년 국제 연맹이 출범하였고 본부는 중립국인 스위스의 제네바에 위치했습니다. 국민 투표 결과 근소하게 국제 연맹 가입을 찬성하는 표가 더 많이 나와 스위스는 국제 연맹에 가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