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현대 역사2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대공황은 전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쳤고 스위스 역시 심대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주요 수출 분야였던 시계를 비롯한 기계 산업과 섬유 산업의 수출량이 급감했고 유제품의 가격은 폭락했습니다. 실업자들도 양산되어 1936년에 실업자의 수는 약 124,800명에 이르렀습니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가 법제화된 것도 이 시기인데 경제가 어려워진 세계 각국이 스위스 계좌를 추적하자 스위스는 1934년 법을 제정해 계좌를 어느 누구도 추적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스위스 비밀계좌는 세계인들로부터 스위스가 가장 큰 비판을 받는 부분으로서 전 세계의 막대한 검은돈이 스위스 은행에 예치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위스는 자금에 대한 보관료를 통해..
스위스의 근대 역사2 나폴레옹 전쟁 이후 1815년 빈 회의 결과 스위스는 영세 중립국임이 인정되었고 발레, 뇌샤텔, 제네바가 스위스 연방에 편입되어 현재 스위스 국경과 유사한 형태를 갖췄습니다. 영세 중립국의 지위는 스위스의 외교적 노력도 있었지만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얻어진 것이었습니다. 어느 한 국가가 스위스를 단독으로 차지하여 세력 균형이 무너질까 두려웠기 때문에 스위스를 서로 침략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스위스는 1815년 본격적으로 과거의 각 주들이 자율성을 가졌던 구체제로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전파한 혁명의 사상은 스위스인들에게 많이 뿌리 내려져 있었습니다. 약한 연방정부를 선호하는 즉 과거 구체제로 선호하는 보수주의자들에 대항해 자유주의자들은 계속적인 투..
스위스의 근대 역사1 16세기 동안의 종교 갈등은 17세기 초 30년 전쟁으로 폭발했습니다. 유럽 최초의 세계 대전이라 일컬어지는 30년 전쟁은 여러 국가들이 종교적 목적과 실리적 목적을 가지고 참전했습니다. 프랑스가 대표적인 실리적 이유로 참전한 국가로서 가톨릭 국가였지만 합스부르크가를 견제하기 위해 신교 측으로 참전했습니다. 스위스 역시 실리적 목적을 가지고 이 전쟁을 대응했습니다. 대응의 방식은 프랑스가 참전한 것과 달리 스위스는 이 전쟁에 휩쓸리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내부에 다른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국 스위스는 중립을 선언했고 혹시 모를 침략을 대비해 약 36,000명의 군인을 국경 지대에 파병할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그 결과 큰 피해 없이 전쟁을 피해 갈 수 있었고 거기에 더..
스위스의 중세 역사2 수차례 전쟁에서 불패 신화를 기록한 스위스는 자신감이 높아져 해외 영토에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그 지역은 바로 이탈리아 전쟁이 한창이던 이탈리아의 북부지역이었습니다. 스위스는 처음 1510년 프랑스 편으로 용병을 보냈으나 1512년 교황의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프랑스 연합과 교황 연합이 라벤나에서 싸우는 틈을 타 스위스는 밀라노를 정복했고 이탈리아에서 본국으로 물러난 프랑스는 베네치아와 동맹을 맺어 이탈리아를 재침공했고 베네치아군은 노바라에서 스위스군을 에워쌌습니다. 프랑스군이 뒤이어 스위스를 공격했지만 수적 열세였던 스위스가 오히려 대승을 거뒀습니다. 남쪽의 이탈리아 북부 영토를 차지할 수도 있겠다는 단꿈에 젖어들 무렵 1515년 프랑수아 1세가 프랑스 국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